언제부터였을까요.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여름이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있던 그 여름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달력은 분명 여름의 한가운데를 가리키고 있지만, 창밖의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놀던 여름날을 기억합니다. 어머니는 "오늘 30도래! 더위 먹지 않게 조심해라" 하시며 시원한 등목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가장 더운 날'의 기준은 섭씨 30도 초반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더위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거나,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을 베어 물면 금세 잊을 수 있는, 건강한 여름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여름은 어떻습니까. 이제 30도는 '시원한 여름날'의 기준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뉴스에서는 연일 34도, 35도를 웃도는 폭염 경보를 알리고, '덥다'는 말로는 부족한, 숨이 턱 막히는 열기가 도시를 감쌉니다. 어린 시절의 '더위'가 명랑한 소년 같았다면, 지금의 '폭염'은 우리를 위협하는 거인처럼 느껴집니다.
비 내리는 풍경 또한 달라졌습니다. 예전의 장맛비는 며칠이고 묵묵히, 꾸준하게 세상을 적셨습니다. 창밖으로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며 부침개를 부쳐 먹고, 눅눅하지만 낭만적인 분위기에 젖어들기도 했습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하루나 이틀은 으레 비를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비는 마치 변덕스러운 아이 같습니다. 아침에는 햇볕이 쨍쨍하다가도, 점심시간에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시간당 수십 밀리미터의 비를 퍼붓습니다. 그러다 한두 시간 만에 언제 그랬냐는 듯 뚝 그치고 다시 해가 나옵니다. 우산을 챙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시간별 날씨 예보를 수시로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게릴라성 호우'는 더 이상 낭만이 아닌, 대비해야 할 재난이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 환경 오염과 그로 인한 기후 변화를 지목합니다. 과학적인 근거와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하지만 복잡한 원인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는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으며, 우리가 알던 자연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 속 여름과 지금 우리가 마주한 여름 사이의 간극. 그 간극은 단순히 온도의 숫자나 강수량의 패턴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계절의 안정감, 자연과의 익숙한 약속이 사라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낯설어진 여름에게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숙제를 받아 든 채, 변해버린 계절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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