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 초, 연일 계속되는 뉴스는 유럽의 기록적인 폭염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유럽은 제게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살면서 가볼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싶은 곳, 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곳이라는 생각에 그들의 고통은 막연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뉴스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맹렬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유럽에는 에어컨 보급률이 현저히 낮으며, 수백 년 된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 구조적으로 에어컨 설치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푹푹 찌는 한여름,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더위를 견뎌야 하는 유럽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자 일종의 안쓰러운 마음, 즉 동정심이 생겨났습니다. '저렇게 더운데 에어컨도 없다니, 얼마나 힘들까. 참 불쌍하다.' 이것이 제가 가진 정보의 전부였고, 그 안에서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심코 접한 한 가지 정보가 저의 이 섣부른 동정심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바로 유럽의 '위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서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서늘한 지역으로 꼽히는 개마고원보다도 훨씬 북쪽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말은 즉, 본래 유럽은 여름이 혹독하게 덥지 않은, 축복받은 기후를 가진 땅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에게 에어컨이 없었던 것은 가난해서도, 기술이 없어서도 아닌, 그저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후 변화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덮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 순간, 그동안 유럽을 향해 가졌던 저의 동정심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매년 찜통더위와 싸우며 에어컨 없이는 여름 나기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리가 더 '불쌍한' 처지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 오래된 유머 하나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매일 지하철역에서 힘겹게 구걸을 하던 분이 퇴근할 때는 으리으리한 벤츠를 타고 사라진다는 그 이야기 말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구걸하는 행위'만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하고 동정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벤츠'라는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모든 상황은 우스꽝스러운 코미디가 되어버립니다. 에어컨 없는 유럽을 보며 '불쌍하다'고 여겼던 제 모습이 꼭 그와 같았습니다.
2025년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이어진 기록적인 유럽 폭염은 제게 단순히 기후 변화의 심각성만을 일깨워 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한된 정보와 피상적인 관찰에 기반한 선입견이 얼마나 위험하고 우스운 것인지를 통렬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진정한 이해는 표면적인 현상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맥락을 파악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오늘 이후, 저는 세상을 볼 때 나의 '동정심'이 혹시 '벤츠'의 존재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질문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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