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음악, 추억을 듣다, 얼룩을 지우다

야옹우는멍멍이 2025. 10. 26. 15:52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 변화를 수반하지만, 그중 하나는 음악을 듣는 습관이 바뀌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쉼 없이 쏟아지는 신곡을 쫓아가기 바빴다면, 이제는 플레이리스트를 가득 채운 옛 노래들을 더 자주 찾게 됩니다. 새로운 멜로디가 주는 자극보다, 익숙한 선율이 안겨주는 편안함과 추억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 탓일 겁니다.

음악은 강력한 매체입니다. 그 시절의 영화나 그림, 혹은 낡은 사진 한 장도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지만, 음악만큼 강렬하게 그 순간의 공기와 감정까지 고스란히 되살려내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그때 그 노래'가 아니라, '그 노래를 듣던 나'를 소환하는 것이죠.

전주가 흘러나오는 단 몇 초 만에, 저는 십 대 시절의 교실로, 이십 대의 설렘 가득했던 거리로, 혹은 땀 냄새 밴 서툰 첫 직장으로 순간 이동합니다. 기쁜 일, 슬픈 일, 즐거운 일, 때로는 얼굴 붉히며 화냈던 일까지. 그 음악이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갑니다. 놀라운 것은,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마저도 세월이라는 필터를 거쳐 이제는 그저 "그땐 그랬지"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추억의 한 조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흐르는 세월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만 만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중했던 내 추억의 배경 음악이 예기치 못한 소음으로 '오염'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입니다.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가 마약, 음주운전, 사기, 병역 회피 같은 파렴치한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혹은, 한때 그의 목소리를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을 편 가르듯, 극단적인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며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조롱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그 순간, 제 추억 속의 순수했던 음악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게 됩니다.

아름다운 멜로디 위로 그들의 불미스러운 언행이 겹쳐지고, 노래를 들을 때마다 불쾌한 감정이 불쑥 끼어듭니다. 내 개인적인 경험과 행복했던 순간들이, 그 노래의 주인인 가수의 도덕적 결함 때문에 변질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연예인이 공인이네 아니네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논쟁을 떠나, 자신의 목소리와 음악이라는 강력한 매체로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누군가의 인생 한 페이지에 깊숙이 스며들었다면, 최소한 그 추억을 더럽히지는 말아야 할 책임이 있지 않을까요. 그 음악을 사랑했던 팬들에 대한, 그리고 그 음악과 함께 울고 웃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도 저는 운전대를 잡고 추억의 음악을 틈틈이 듣습니다. 하지만 어떤 노래들은 반가움과 동시에 불쾌한 감정이 올라오기 전에, 미련 없이 다음 곡으로 넘겨버립니다. 그것은 노래가 미워서가 아니라, 얼룩진 현재가 나의 소중한 과거마저 망가뜨리게 두고 싶지 않은, 저의 작은 방어기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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