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4

음악, 추억을 듣다, 얼룩을 지우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 변화를 수반하지만, 그중 하나는 음악을 듣는 습관이 바뀌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쉼 없이 쏟아지는 신곡을 쫓아가기 바빴다면, 이제는 플레이리스트를 가득 채운 옛 노래들을 더 자주 찾게 됩니다. 새로운 멜로디가 주는 자극보다, 익숙한 선율이 안겨주는 편안함과 추억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 탓일 겁니다.음악은 강력한 매체입니다. 그 시절의 영화나 그림, 혹은 낡은 사진 한 장도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지만, 음악만큼 강렬하게 그 순간의 공기와 감정까지 고스란히 되살려내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그때 그 노래'가 아니라, '그 노래를 듣던 나'를 소환하는 것이죠.전주가 흘러나오는 단 몇 초 만에, 저는 십 대 시절의 교실로, 이십 대의 설렘 가득했던 거리로,..

Essay 2025.10.26

유럽 폭염에 대한 단상: 섣부른 동정의 위험성

2025년 7월 초, 연일 계속되는 뉴스는 유럽의 기록적인 폭염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유럽은 제게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살면서 가볼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싶은 곳, 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곳이라는 생각에 그들의 고통은 막연하게만 느껴졌습니다.그러다 문득 뉴스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맹렬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유럽에는 에어컨 보급률이 현저히 낮으며, 수백 년 된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 구조적으로 에어컨 설치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푹푹 찌는 한여름,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더위를 견뎌야 하는 유럽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자 일종의 안쓰러운 마음, 즉 동정심이 생겨났습니다. '저렇게 더운데 에어컨도 없다니, 얼마나..

Essay 2025.08.01

세월의 길목에서

어린 시절, 제게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척척박사이자, 못하는 것이 없는 슈퍼맨이었습니다. 굳이 여쭈어보지 않아도 먼저 나서서 척척 해결해 주시는 그 넓은 등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버지만 있으면 이 험한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고, 소년은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말이 곧 법이었고, 세상의 진리였습니다.그랬던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위가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제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입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지면서 아버지께 질문을 던졌을 때, "글쎄, 그건 아빠도 잘 모르겠는데"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새로 산 비디오 플레이어나 컴퓨터는 어느새 제가 아버지께 사용법을 알려드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아버지가 모르는 ..

Essay 2025.07.21

낯설어진 여름에게

언제부터였을까요.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여름이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있던 그 여름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달력은 분명 여름의 한가운데를 가리키고 있지만, 창밖의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만 느껴집니다.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놀던 여름날을 기억합니다. 어머니는 "오늘 30도래! 더위 먹지 않게 조심해라" 하시며 시원한 등목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가장 더운 날'의 기준은 섭씨 30도 초반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더위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거나,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을 베어 물면 금세 잊을 수 있는, 건강한 여름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여름은 어떻습니까. 이제 30도는 '시원한 여름날'의 기준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뉴스에..

Essay 2025.07.19